
[한국제일신문, 김성옥기자] 서울역사박물관은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사업의 일환으로 송파구 방이동 일대의 장기사적 변천과 급격한 도시화 과정을 종합 기록한 보고서 『올림픽 타운, 방이동』을 발간했다고 1일 밝혔다.
방이동은 고대 한성백제 왕성인 위례성이 있던 역사적 거점이다. 몽촌토성을 중심으로 풍납토성과 대규모 왕실 묘역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 땅은 조선시대를 거쳐 1970년대까지 배추밭과 과수원이 펼쳐진 전형적인 근교 농촌이었다.
“1970년대까지 방이동에서 제일 큰 마을은 몽촌이었어요. 170호 정도가 살았어요. 마을로는 새말·큰말·전나무골·일동네·윗말·아랫말이 있었어요. 몽촌에 살고 있던 주요 성씨는 이 씨·김 씨·구 씨예요. 이 씨는 새말에 김 씨는 큰말에 모여서 살았어요.”(방이동 토박이 이승오, 1953년생)
한적한 농촌이 결정적 전환점을 맞은 것은 88서울올림픽 유치였다. 1982년 '올림픽 및 아시아경기대회 주요 시설 배치 조정 방안'에 따라 방이동 일대가 국립경기장 및 선수촌 부지로 최종 낙점되면서 논밭과 초가집이 늘어서 있던 땅 위에 거대한 스포츠 인프라가 단숨에 들어섰다.
국가적 메가 이벤트의 화려한 조명 뒤에는 삶의 터전을 내어준 원주민들이 있었다. 1986년 올림픽공원 조성과 함께 전면 퇴거 조치된 몽촌 마을 사람들은 실향의 아픔을 달래고 공동체의 명맥을 잇기 위해 ‘몽촌향우회’를 조직했다. 이들은 고향 땅이 거대한 공원으로 변모한 오늘날까지도 과거 마을을 지켜주던 옛터의 느티나무를 매년 찾아가 ‘당산제(堂山祭)’를 지내고 있다.
방이동 대변혁의 첫 번째 상징은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다. 서울시는 1984년 국제 현상공모(응모작 39점)를 통해 당선안을 선정, 1986년 11월 착공해 1988년 5월 완공했다. 당선안은 기존 ‘남향 일자 배치’를 탈피한 방사형 배치에 전체 세대의 20%를 복층형으로 구성했다. 국내 공동주택 역사상 최초로 단지 전체에 지하 주차장을 도입한 파격적 설계였다. 142㎡(43평) 이상 세대에는 가구별 전용 지하주차 공간(4.7평형)이 별도 분양됐다. 단지 안에 초중고 6개교, 백화점 규모의 상가, 수영장까지 갖춘 '도시 속의 도시'를 지향했다.
서울올림픽의 심장이었던 올림픽선수기자촌은 대회 종료와 함께 전혀 다른 얼굴로 탈바꿈했다. 대회 기간 오륜여중은 종교관·오륜국교는 선수촌 병원·보성중고는 임시 주차장·창덕여고는 경비요원 숙소로 운영된 이후 본래의 교육 기능으로 환원됐다. VIP 라운지·연회장은 우체국·은행·약국으로, 관리사무소·창고는 유치원·노인정으로 바뀌어 일상의 주거 단지로 재구성됐다.
단지 안에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든 교육 과정이 해결되는 자족적 생활환경은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의 가장 큰 강점이었다. 중심 상가에서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보행 구조 덕분에 거주자들의 일상 동선은 단지 안에서 자연스럽게 완결됐다.
오늘날 서울 시민의 산책 명소인 올림픽공원 88마당 일대는 한때 사금(砂金)을 캐던 땅이었다. 식민지 시기 방이동 일대에는 민간 차원의 사금광 개발이 이루어졌으며 당시 사금 채취지는 '버럭데미'라는 지명으로 불렸다.
“지금 88마당 그쪽으로는 다 금광 구덩이라고 그랬어요. 웅덩이가 무척 많았었어요. 지방 사람들이 여기로 금 캐러 많이 왔어요.”(신정수, 남, 1942년생)
올림픽공원은 경기 시설의 역할을 넘어 방이동을 서울의 대표적인 K-pop 공연 거점으로 변모시킨 문화 인프라다. 1992년 체조경기장(현 KSPO DOME)에서 열린 '뉴 키즈 온 더 블록' 내한 공연을 기점으로 '공연의 메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2018년 대규모 리모델링을 마친 KSPO DOME은 약 1만 5,000석 규모를 갖춘 명실상부한 'K-pop의 성지'다.
KSPO DOME은 전체 대관의 90.7%(2024년 기준)를 문화 공연으로 채우고 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아이브(IVE), 스트레이 키즈(Stray Kids), 르세라핌(LE SSERAFIM) 등 최정상 그룹의 월드 투어 무대로 활용되며 전 세계 팬들이 모이는 곳이 됐다.
올림픽은 방이동 내부의 공간적 성격을 두 갈래로 갈라놓는 결정적 계기이기도 했다. 올림픽공원을 품은 방이1동은 쾌적한 녹지환경과 대형 평형 아파트, 고급 빌라트를 기반으로 가족 중심의 안정적 정주 공간으로 고도화됐다. 반면, 방이2동은 올림픽 손님맞이용 숙박 인프라를 토대로 역동적인 상업·유흥 중심지로 분화됐다.
올림픽은 ‘숙박촌’이라는 이질적 유산도 방이동에 남겼다. 이것은 훗날 ‘방이동 먹자골목(방이맛골)’탄생의 씨앗이 됐다. 정부는 외지인 수용을 위해 방이2동 일대 숙박업소 허가 요건을 대폭 완화했고, 1985년부터 1989년 사이에만 13개의 숙박업소가 문을 열었다. 이로써 400여 개의 객실(한실 197실·양실 221실)이 공급됐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두 개의 생활권이 공존하는 방이1동(교육·주거)과 방이2동(상업·유흥)의 구조는 우리나라 압축 도시화의 복합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방이동은 국가 주도의 메가 이벤트 개발이 한 동네의 지형과 문화를 어떻게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지 보여주는 한국 압축 도시화의 생생한 교과서다. 대단위 아파트와 공원, 먹자골목과 숙박촌, 중산층 가족과 K-pop 팬덤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존하는 방이동의 모습은 올림픽의 유산이 고정된 과거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현재진행형의 역사임을 보여준다.
본 조사 보고서는 서울책방과 서울역사박물관 뮤지엄샵에서 구매할 수 있다.
[보도자료출처: 서울시]